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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이

아이엠유 2009. 5. 5. 10:26

 

 

 

 

 

 

 

 

 

 

산사나이

집 앞 산에는 푸름이 더해가고 희고 붉은 꽃들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강한 열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더니 금세 우박으로 바뀌었다. 쌀알만 하던 얼음덩어리가 콩알만큼 커지고 무섭게 내렸다. 양철지붕은 요란하게 울려 집안에 있어도 직접 우박을 맞는 느낌이었다. 좀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기세를 더하고....... 이렇게 두 시간이 넘도록 내렸다.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넘어갈 무렵 키를 훨씬 넘는 육중한 배낭을 짊어진 사람이 집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들이 닥친 정체불명의 사람이 그것도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우박이 무섭게 내린 뒤에, 비에 젖은 검은 옷이 더 검게 보이는 그를 보고 아내는 무서워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이었다.  연휴를 맞아 백두대간에서 벗어나온 백두정맥의 한 구간을 돌아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집을 나와 태백에서 산행을 시작했단다.

오늘 답운재를 향하던 중 갑자기 내린 우박, 천둥번개를 맞으면서 세 시간동안 임도를 걸어서 피신해 온 것이다.

“제가 있는 바로 앞에서 번개가 내려왔고 점점 내 곁으로 다가오는 번개를 보고 격심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하산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피로하고 공포에 시달린 모습이 역력한 그는 잠시 후에 안정을 되찾았다.

“김호규 라고 합니다.”

“집은 어디에 있나요?”

“울산입니다. 호계동... 경주 쪽에 있습니다.”

“혼자서 다니면 무섭지 않나요?”

“만나는 자연이 너무 아름답고 좋으니 무서울 겨를이 없지요.”

“왜 혼자서 다니나요?”

“자유지요. 쉬고 싶으면 마냥 머물고 가고 싶으면 가고... 함께 여러 명이 가는 산행도 했습니다만 줄을 지어 쉬지 않고 따라다니는 산행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었지요.”

“잠은 어디서 어떻게 자는가요?”

“마음에 드는 곳이면 어디나.....  지붕이 있는 정자는 최상이지요. 어제도 봉화 쪽으로 오는 곳에 있는 쉼터에서 잤습니다. 얼굴 부분만을 움직일 수 있는 침낭을 이용합니다.”

“잠이 오는지?”

“잘 오지는 않지요. 비몽사몽을 헤매다 보면 날이 새고 그러면 일어납니다.”

“가족은?”

“아내는 경기도 양평 산음에서 마음을 치료하는 단체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하나 있는 아들은 남양주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니고요.”

“왜 자녀를 한명만 두었지요? 대한민국이 인구가 부족한데.....”

“아이를 가지고 낳을 때 너무 힘들어했으니 그만 두었습니다.”

그는 별난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아내도 아이도 내버려 두고 물론 그도 하고 싶은 산행을 마음껏 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 고급 승용차를 생산하는 라인에서 20년간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실업자가 많은 요즈음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자체가 바로 큰 행복이라고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시간외 근무, 봉급수준, 근골격계질환, 근무시간 등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룻밤을 묵고 나서 헤어질 시간, 그는 지갑을 가지고 왔다.

“고맙게도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만 얼마라도 드리고 가고 싶습니다.”

“그냥 돌아가서 자동차를 열심히 만드세요. 그리고 좋은 차 한대를 언젠가 보내세요. 하하.....”

그는 그렇게 하마고 약속했다. 그리고 20키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나섰다. 배낭 뒤쪽에는 내가 만든 책 3권이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짐을 지워준 것이다. 더 열심히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하게 살도록.


2009-05-04(월)